하노이의 3번째 날이 밝았다. 어젯밤부터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해 아침까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. 슬리퍼나 샌들도 없이스니커 하나 들고 와서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신발이 젖을까 함부로 나갈 생각을 못 한다. 우산도 하나 있긴 한데 내 손바닥보다 조금 큰 우산이라 별 의미 없지 싶다. 좀 전까지만 해도 주룩주룩이었는데 어느새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마구잡이로 쏟아진다. 저 빗방울에 맞으면 왠지 아플 것 같다. 그 정도로 커다란 물방울들이 하늘에서 쏟아졌다.그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오늘은 그냥 집에 있기로 마음먹었다.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며 밀린 유튜브만 보고 있었다. 그렇게 누워 이 따보니 배가 고팠고 시계를 보니 이미 점심시간은 훌쩍 넘겨있었다. 배는 고프고 숙소엔 먹을 게 없고 밖엔장대비가 내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. 비가 잠깐 그치면 후다닥 나가서 사 와야지라는 생각으로 옷을 입고나를 미처 가리지도 못할 것 같은 가냘픈 우산을 들고 비가 줄어들길 기다렸다.
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비가 그쳐 들었을 때 바로 숙소를 나섰다. 숙소 바로 앞에 반미를 파는 작은 가게가 있어그곳에서 반미를 사고 숙소 앞 마트에서 콜라를 사서 다시 숙소로 향했다.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작은 우산으로는 내 몸을잘 가리지 못해 옷과 신발이 점점 젖어왔다. 거의 젖은 체로 숙소로 돌아와서 바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. 숙소 밖에 있는 화장실의 불편함을 또 한 번 느낀 채 조그마한 식탁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아까 사 온 반미와 콜라를 식탁에 올렸다. 분짜도 그렇고 짜까탕롱도 그렇고 이번에 먹는 반미도 그렇고 다 여기에 와서 처음 먹는 음식이다. 학교 앞에 베트남음식점이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보진 않았는데 잘한일인 것 같다. 처음 가는 베트남 여행인데 먹어본 음식을 먹는 것보다 안먹어본 음식을 먹는 게 조금 더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.
그렇게 반미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강한 고수 향이 올라왔다. 고수 못 먹는데... 고수향 때문에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. 바로 반미를 해체해 안에 있는 고수 조각들을 골라내었다. 그제야 제법 먹을만한 반미가 되었고 또다시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. 이상한 다져진 무언가를 넣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돼지 간이었나 그랬다. 맛은 뭐 그럭저럭한 바게트빵에 고기넣은 맛? 한 끼 식사 정도로는 나에게 있어서 부족하지만 나름 괜찮았던 것 같다. 고수랑 다져진 돼지 간을 빼면. 오늘은온종일 하는 것도 없이 방에서 놀았다. 만약 3박 4일이거나 4박 5일로 왔다면 비가 와도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밖으로 향했을 텐데 나는 7박 8일 여행을 왔다. 여행도 오래 하면 힘든데 오늘같이 쉬는 날도 있어야지. 김민철 작가님이 쓰신 책 모든 요일의 여행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. 여행에도 일요일 필요하다고. 그 말에 동감하는 바다. 짧은 여행이라면 그렇게 못하겠지만 나처럼 여유 있는 사람에겐 일요일이 있는 게 좋다. 매일 빡센 여행으로 지치면 뒤로 갈수록 여행이 일 같아질것이다. 그렇게 되면 여행하는 그 날이 월요일 같겠지. 그렇기에 여행이 있어서 일요일은 필요하다. 나 같은 여행자에겐.
아쉽게도 이 날은 사진을 찍지 않았다. 밖에 내리는 비를 찍어둔 동영상이 있긴한데 올리려고 하니 카카오 로그인 해야된다고 한다. 막상 로그인하면 로그인이 안되고 다시 로그인 화면으로 돌아와서 짜증나서 안했다. 태블릿이라그런가.
'19.08 하노이' 카테고리의 다른 글
베트남 하노이 여행기(5) (0) | 2020.03.14 |
---|---|
베트남 하노이 여행기(4) (0) | 2020.03.07 |
베트남 하노이 여행기(2) (0) | 2020.03.02 |
베트남 하노이 여행기(1) (0) | 2020.03.02 |